종친회 소식

제주지역

[제주도친족회] 제주도친족회의 발자취
작성자현상돈()작성일2023-02-08조회수2198
파일첨부

제주도친족회의 발자취

<제주도친족회 명예회장 현임종시랑공 28

 

 

연주현씨 제주도 친족회는 제주도 입도조  목사공 사경(思敬)공의 자손과 그 뒤에  명월만호 직책으로  입도한 우성(禹成)공의 자손들로 구성한 조직이다.

 

목사공 사경(思敬)공은 시랑공 담윤(覃胤)공의 9세손이시며 제주목사로 입도한 다음 임기가 끝나도 그냥 제주에 눌러 앉아 살면서 수인(壽仁)부인(富仁)귀인(貴仁)공 세 아들을 두셨다.

 

큰아들 수인(壽仁)공은 제주시 거로마을을 중심으로 살아 그 자손들은 소위 거로파(巨老)라 불리며둘째아들 부인(富仁)공은 서귀포시 남원읍을 중심으로 살았는데 그의 묘소 지명을 따서 신산(神山)파라 불린다.

 

셋째 아들 귀인(貴仁)공은 서귀포시 성산읍을 중심으로 살았고 역시 그의 묘소지명을 따서 양의막(羊衣幕)파로 불린다.

 

뒤 늦게 입도한 현우성(玄禹成)공은 시랑공 17세손이며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 소위 함덕파라고 부르기도 했지만은 중랑장(中郞)공파라 부르는게 맞다.

 

입도선조 목사(牧使)공 사경(思敬)공과 그의 아들 3형제의 묘소는 현재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60번지에 모셔져 있어 매해 4월 셋째주 일요일 도내외에 거주하는 자손들의 그 곳에 모여 묘제 봉행하고 친족회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목사공의 후손인 19세 현치적(玄致績)공은 매우 어렵게 자랐으나 풍수지리에 밝은 고전적(高弘辰,典籍)과 의 인연으로 큰 재산을 이루고 어느 해 큰 흉년에 그 재산들을 내놓아 큰 자선을 베풀어 조정에서 선공감참봉(繕工監參奉)의 벼슬을 받았다.

 

25세 월곡(月谷현덕문(玄德聞)공은 당시 제주만의 아니라 호남까지 학문으로 널리 알려진 유학(儒學)자이고 많은 저서와 작품을 남겼다.

19세 현원상(玄遠祥)공 역시 알려진 효자이고 큰 자선을 배푼공으로 조정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벼슬을 받았고,

 

25세 현일문(玄日汶일명圭錫)공은 천문학에 능통하여 서양문화가 들어와서 동양문화가 개화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지리관건(地理關鍵)이라는 전서도 남겼다.

28세 현상휴(玄商休)공은 귤림서원 재건에 앞장섰는데 이것이 지금의 오현단이다.

유림인 제주향교의 거두에는 27세 현승규(玄升圭)공과 그의 큰아들 현경호(玄景昊)공을 들 수가 있다.

현경호공은 해방후 제주중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까지 역임한 제주유림의 거두이다.

 

근세에 들어와서 제주현씨를 빛낸 인물로서는 소암(素菴) 28세 현중화(玄中和)공을 들 수 있다서예가로서 국전심사위원까지 역임한 공의 기념관이 서귀포시에 있어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곤 한다.

28세 현오봉(玄梧鳳)씨는 6선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세 번의 운영위원장도 역임했고 지금의 국회의사당 건립위원장으로 국회의사당 건립을 진두지휘 해 지은 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28세 현경대(玄敬大)씨는 지금의 대종회장이지만 5선의 국회의원으로 국회 운영위원장법사위원장등 요직을 역임했고 무엇보다도 헌법개정 기초위원장으로서 지금의 헌법을 만든 공로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30세 현인택(玄仁澤전 통일부장관과 30세 현애자 전국회의원도 제주도 현씨다.

 

27세 현평효(玄平孝)씨는 제주대학교 초대총장을 역임 하였고 제주도방언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 제주교육계에서는 제주대학에 29세 현학순, 28세 현용준 前 교수 등과 중고등학교에서는 30세 현평숙 前 제주도교육청 학무국장과 28세 前 제주일고 교장 현성효씨 그리고 초등계에서도 수많은 교장들과 선생 등이 많아

제주교육은 현씨가 도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서예계에서는 소암선생 말고도 라석(羅石) 30세 현민식(玄玟植)씨가 우리나라 서예계를 주름잡고 있고

한글 서예계는 대통령상을 받은 한곬 29세 현병찬(玄昞璨)씨가 우리나라 한글서예계를 대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서귀포법원장을 역임한 30세 현영두(玄榮斗)씨와 28세 현천욱, 30 현순도변호사를 비롯한 많은 법조인의 전국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다.

 

행정계에서는 서귀포시장을 역임한 29세 현치방(玄致邦)씨와 28세 현을생씨, 29세 현인철 前 남제주군수 그리고 31세 현승탁(玄丞倬前 제주도의회 의장과 29세 현성익(玄聖翊前 부의장, 28세 현우범(玄又範前 의원, 28세 현정화(玄正和前 의원, 27세 현길호(玄吉鎬의원그리고 30세 현태식(玄泰植前 제주시의회의장 등의 활동의 돋보인다.

경찰계에서는 정부수립 초창기 제주경찰청장을 역임했고 그뒤에 내무부 치안국장을 역임한 현규병씨의 후광을 받아 28세 현병두씨가 전남 광주경찰서장을 역임했고 그리고 제주경찰서장을 역임한 28세 현상종(玄商鍾), 29세 현창하(玄昌廈)씨 등이 활동이 돋보인다.

재계에서는 삼성물산회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한 30세 현명관(玄明官)씨가 있다.

 

연주현씨 제주도친족회는 일제말기인 1954년 31일에 창립하였다

당시 제주전매서장 자리에 있던 27세 현중식(玄重植)공이 초대회장을 맡아 10여년간 기초를 닦았다.

 

1954년도에는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던 28세 현계평(玄癸平)공이 2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1975년 4월 까지 11년동안 회장직을 맡으면서 우리친족회 회관부지를 마련하였고입도선조 묘역을 새롭게 정리하는 한편숭조애족(崇祖愛族)이라는 종훈을 만들어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1975년도에는 2대 제주도의회의원을 역임한 28세 현희형(玄希炯)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임기중에 延州誌창간호를 발간했다.

 

1979년도에는 제주해무청장을 역임한 28세 현필호(玄弼昊)씨가 취임하여 족보(제주파보)를 만들었고

1984년도에는 천일목재사 사장인 29세 현계호(玄桂浩)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친족회관을 건축하였고 연주지” 2호도 만들었다.

 

1987년도에는 前 제주대학교 총장인 27세 현평효(玄平孝)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장학기금조성을 시작 하였고

1991년도에는 前 제주도교육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29세 현화진(玄化珍)씨가 취임하여 장학제도를 확립하고 연주지” 3호를 발간 했다.

 

1995년도에는 신흥운수 사장인 28세 현상흡(玄商洽)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입도선묘에 조경수 식수를 하였고제주도청년회를 발족하였으며 청년회체육대회를개최 친족님들과 화합하는 기틀을 마련 하였다.

 

1990년도에는 서귀포시장을 역임한 29세 현치방(玄致邦)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다시 족보를 발간하였고 역시 체육대회를 개최 하였다.

 

2003년도에는 신용보증기금 감사실장을 역임한 28세 현임종(玄林鍾)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장학기금확충과 대종회와의 유대강화에 힘썼고 역시 체육대회를 개최 하였다.

 

2007년도에는 한글 서예가 29세 현병찬(玄昞璨)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친족들에게 한글가훈을 보급하였고 역시 체육대회를 개최 하였다.

 

2011년도에는 사업가 29세 현성모(玄聖模)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전자족보 발간에 온힘을 썼고 역시 체육대회를 개최 하였다.

 

2015년도에는 제주세관장을 역임한 29세 현후길(玄厚吉)씨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대종회 수석부회장 까지 겸하여 전자족보 만드느라 제주와 대종회 사이의 유대강화에 공을 세웠으며입도조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에 주차장을 조성하였고 역시 체육대회를 개최 하였다.

 

2019년도에는 제주도의회 부의장을 역임한 29세 현성익(玄聖翊)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청년회 주관 친족회단합대회를 개최하였고 연주지 제4호 발간을 추진하는 등 친족회 발전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도 현씨들의 단합된 모습은 현오봉 의원과 현경대 의원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데 조직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崇祖愛族” 이라는 종훈(宗訓)아래 단합하여 상부상조하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는데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전글 祖上의 뿌리를 찾아서
다음글 연주현, 역사문화탐방 '대종회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