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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현촌종친회] 소위장군공파 집성촌 현촌 지명의 유래 고찰
작성자관리자(hyunc033@hanmail.net)작성일2023-07-20조회수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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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장군공파 집성촌 현촌 지명의 유래


대종회 이사 현근수(소위장군공파 27)

현촌마을 행정구역의 변천은 다음과같다.

  고려(태조23)940년 양성현의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조선초기(태종13)1413년에는 충청도에서 경기도 양성현으로 바뀌었으며, 중종19(1525)에 입향시조님(:13)께서 양성현 현촌마을에 정착하셨다. 조선후기(고종32)1885년 양성현을 양성군으로 1914년 양성군과 안성군을 병합개편하여,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용이리 현촌으로 되었다. 이후 19832월 행정구역개편으로 평택군 평택읍에 편입, 19861월 평택군에서 평택시로 승격되어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현촌으로 되었다. (자료) 주제로보는 평택시 사():향토지, 조선후기 안성지방지도 : 이현군 역사지리학자.


소위장군공 양성파 정착지의 근거

갑자보(5:1924)에서보면 문하시랑공(담윤)의 직계종손 치룡(도첨의공 6)의 장남 옥량(7)의 묘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차남 윤녕(7)과 희(8:소위장군), 서침(9)의 묘는 평안북도 영변군 연산면에 모셔져 있으나 우방(10)의 묘는 불분명하다. 이후 응준(11)은 안성고을에서 참봉으로 봉사하셨고 묘는 안성오촌에 귀윤(12)는 양성현촌에 모셔져 있어 양성파로 등재 되어있으며 걸(13)는 양성현촌에 모셔져 있다고 하나

현재 실존하지는 않는다(11~13).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위장군공파는 평택현촌종중이 유일하다. (자료) 갑자보(5:1924) 연주현씨 일원분파도 및 도첨의공 자제형제파 분계도.

 

집성촌 현촌의 명명과 선조의 발자취

소위장군공파 집성촌은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현촌(신주소:경기도 평택시 현촌 3)이며 약 500여년(1525)전 걸(13)할아버지께서 정착하시고 뿌리를 내리신 곳이다. 선조님께서는 무과(어모장군)에서 재직후 퇴임하시며 부모님 (귀윤:12)을 모시고 한강을 뒤에두고 남쪽으로 내려오셔 아산만의 상류인 안성천의 넓은 뜰이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처음으로 들어오셔 터전을 잡으시고 정착하신 선조님으로 입향시조님이 되신다. 정착하신 이곳은 백운산(190m)에서 아홉개의 산맥이 동.서로 뻗어 내려오면서 동쪽은 용의머리와 같다하여 용두(龍頭)마을, 서쪽에있는 마을은 용의 귀언저리와 같다고하여 용이(龍耳)마을이라고 풍수지리설에따라 지은 오늘날 용이동인 이곳은 나지막한 야산과 주변에 기름진 논과밭이 넓게 어우러진 곳으로 대대손손의 영화길지라 여기시고 집안의 안녕과 자손이 번영하고져 지명을 현씨성의 마을 현촌이라 명명하시고 집성촌의 기틀을 이루어내신 선대조님이시다. 이후 5대에 걸쳐 무과를 배출하였는데, 부수(14)는 오위(충무위)에서 어모장군 후창(15)은 무과에서 호건(16)은 겸사복(국왕 신변보호)사정으로 몽양(17)과 광운(18)은 훈련원판관이며 무관으로서 국위를 펼쳤다. (자료) 평택현촌종친회 족보(가승보기) 및 어모장군공 유적사기 자체 발간자료 : 1994

 

집성촌 현촌마을을 번성시키신 선대조님의 지혜

후손들에게 물려준 현촌마을을 풍요로운 집성촌으로 슬기롭게 이루신 선대조님은 재덕(19)선조님과 세분의 아드님이다. 재덕(19)선조께서는 통정대부로 종사하시다가 고향으로 낙향하신 후 선산의확장과 묘역을 관리하고 삶의터전의 기반을 마련하셨으며, 중원,중현,중호(20)세분의 아드님은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종중의 토지와선산관리 그리고 집안농지을 확대하며 전형적인 농업에 종사하는 집안으로서 인접주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셨다. 이후 지금으로부터 150~160여년 전.후 중원(장남)종손 집안의 후손분께서 분가하여 마을을 떠나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과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등지에서 터전을 마련하셨고, 중현(차남)과 중호(삼남)집안의 후손분들은 현촌마을과 문중의 역사를 이어오고 지켜오신 분들이다.


농촌속에 밀려온 도시화의 물결

뿌리깊은 역사를 지니고 풍요롭던 시골풍경도 2010년 전.후 도시개발을 피해가지는 못하였고 현재 옛모습은 찿기어려운 신도시 속에서도 현촌교회와 현촌초등학교 등 이름이 남아있다. 선대조님이 모셔져있는 현촌마을의 종중산은 또 한차례 도시개발에 의한 매각이 현재 진행중으로 매각이 완료되면 산소이장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이장 대상지로는 선대조님의 묘소가 일부 있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리 종중산과 유토피아 추모관(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소재)에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다.

 

소위장군공파 평택현촌종중의 현황

중원,중현,중호(20)할아버지의 후손인 평택현촌종중(회장:현종식 대종회이사 26)의 구성원의 세수는 25~29세이고, 종원(,20세이상)은 약 380여분이며 2018년 전자족보발간 등재인원 563명은 새로개발된 도시주변과 전국에 흐터져 살아가고 있으나, 매년 4월 첫째주에 한식제(춘향제) 그리고 11월 첫째주에 시향제(추향제)를 재실,숭조사(경기도 평택시 현신로 35-7번지)에서 봉행하고 있는데, 시향제는 12세부터 21세 까지 16위를 봉행한다. 특히 202211월 시향

제에서는 처음으로 현대식 제례에 대한 설명회와 젊은 한글세대에게 익숙지않은 한문으로된 축문을 한글로 표기하고 뜻풀이해서 사용한 결과 좋은반응을 보였다. 현대식 제례는 이미 남양주풍양종친회(전객령공파)에서 10여년전부터 한글화를 사용하는 좋은사례이다.

 

전해져오는 현촌마을 당제 풍습

당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로 1945년 해방될때까지 매년 지냈다고 하며 당짓개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곳은 야산 정상의 당산나무옆 당재에서 기원제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마을 어귀에는 300여년 이상된 당산나무(황새나무라고도함)있었는데 50여년전 고목이고 태풍으로 손상되어 고사한 것

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가뭄에도 마르지않는 우물샘에서 대동우물고사제를 지낸뒤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하나, 이우물샘도 도시개발로 흔적이 없어졌다.

(자료)두산백과 두피디아.

 

북한지역에서의 현촌 지명

연주현씨회보 7호를 인용하면 박천종친회(경기도 양주시 백석읍)는 해방후 내려와 정착하신 분들에 따르면 평안북도 박천군 동남면 현촌마을이 고향이라고 전한다. 또한 이곳에서 12km 정도에 위치한 영변군 연산면 관동(검각동)소재에는 담윤(문하시랑공)의 묘소(비석)가 위치하고 있는곳이다. 조선향토대백과에는 평안북도 맹산군 영운리 동쪽에있는 현촌마을과 개천군 구읍리에 현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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