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州玄氏의 자긍심을 키우는 인터넷족보가 실현되다.(연주지 4호 기고문, 제주목사공 거로파 29세 현유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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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연주현씨대종회()작성일2023-02-07조회수12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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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州玄氏의 자긍심을 키우는 인터넷족보가 실현되다.
연주현씨대종회 사무처장 현유환(제주목사공 거로파 29세) 족보는 성씨와 관련하여 한 집안의 혈연관계를 규정하는 역사서라 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족보를 집안의 가보로 여겨왔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친족ㆍ문중회의를 할 때에는 족보를 궤짝에 보관하였다 회의 하는 날에는 회의 장소로 옮겨와 족보에 간단한 예를 갖추고 회의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이렇듯 족보를 대하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은 정한수 떠놓고 가족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 이상으로 소중하게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1. 대동보(大同譜)가 탄생하다. 우리 연주현씨 대동보도 우리 현씨 집안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동보 출판 이전에 우리 현씨의 본을 연주, 성주, 순천, 창원, 천녕 등 여러 개의 본으로 쓰고 있다가 1700년대에 와서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선조들께서 시조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저마다 본관을 달리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점과 종친간의 친목과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1747년(조선조 영조 23년 정묘)에 모든 분관을 폐기하고 본관을 시조 할아버지의 고향인 “연주(延州)”로 환원시켜 단일본으로대동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조들이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었으며 대동보의 편찬은 고려조로부터 조선조 중엽까지 약 600여년 동안 가승(家乘)의 형태로 그 계보를 유지해 오다 1747년에 선조들께서 사적(事績)과 자손들의 가승(家乘)을 모아 처음으로 초판인 정묘보를 펴내게 된 것이며 이를 시발점으로 도표 1처럼 대동보는 9차에 걸쳐 수단하여 발간했음을 알 수 있다.
도표 1. 대동보 발간 내력
2. 족보(族譜)의 전자화(電子化) 시대를 열다. 일반적으로 족보는 20~30년 간격으로 족보 발간하는 것을 원칙으로 족보서책을 제작, 배포한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에 경진보가 발간되어 불과 1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자족보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전 인구의 85%가 한글 전용 세대이므로 한자로 쓰여 진 한문 서책 족보는 쉽게 읽을 수 없어 그저 장서용 책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2013년 대종회는 정기총회에서 전자족보 사업을 추진 결의하고 전산업체에서 오랜 기간 전문가로 종사해온 제주목사공 30세 후손인 충훈 종친을 초빙하여 전자족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전자족보는 시조이신 고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지낸 담字윤公 할아버지를 기점으로 하여 그동안 발간된 파보, 세보, 가승 등 일체의 족보자료를 전산입력방식으로 변환시켜 정보화시대에 대응하는 최첨단 족보사업이다. 8수보의 족보서책은 한글이 아닌 한문과 한자로 표기되어서 한글세대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읽기 쉬운 족보를 만들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을 감안하여 전자족보를 추진하였으니 과거에 간행된 대동보에 비하여 월등한 정보력을 갖게 되며 또한 읽기 편한 족보로 진일보 시킬 것이다.
▶ 전자족보(電子族譜)를 추진하는 이유
여기에 전자족보를 추진하게 된 사유를 보면 아래와 같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전자족보는 족보의 변동 사항을 실시간으로 국,내외 어느 곳에서나 제약 받지 않고 수단요청 할 수 있으며, 자료가공 효율성도 매우 높일 수 있다. 출생, 결혼, 사망 정보와 학력, 경력 등 새로 갱신되는 신상정보를 수시로 입력, 교체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주기마다 엄청난 비용과 작업시간을 소모하는 과거유형의 대동보 편찬사업은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전자족보가 간행되면 기존의 파보나 가보 등 여러 종류의 족보를 사실상 별도로 보관할 필요가 없으며, 책자족보로 간행해야 할 번거로움도 피할 수가 있다. 또 대동보에서 파보 및 가보의 필요한 자료를 언제든지 검색하고 출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전자족보를 만듦으로써 국가, 공공기관, 사회단체 등 여러 분야의 소장 정보와 함께 한다는 우리 문중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족보가 아무리 첨단적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원천적 자료인 수단(收單)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뢰 높은 대동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전자 족보(電子族譜) 9수보 작업 준비하다. 대종회 산하에 대동보편찬위원회를 두고, 대동보 9수보 수단지침, 세부계획 등을 세워 철저한 준비와 족보의 구성방식은 8수보 운영규정을 준용했다. 단, 전자족보라는 기술적 특수사항이 내재하므로 편찬위원장의 산하에 편수분과, 기술분과, 재정분과, 운영분과 위원회를 두어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진행했다. 가. 편수분과 위원장은 부회장 중에서 회장단협의회 추천을 받아 회장이 임명하며, 위원으로 각 지역 및 문중을 담당케 하며 수단 위원선정 및 수단접수, 심사, 획정(劃定)업무를 관장했다. 나. 기술 분과 위원장은 컴퓨터 전문가로 기술지원 및 자문을 위하여 종원 중에서 동종업계 활동 중인 분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하며 전자족보 진행전반에 걸쳐 감리와 의견을 제공토록 했다. 다. 기타 임원에 대한 규정은 본회 대동보 편찬운영규정에 따라 위원장이 지명하는 형식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라. 각 파 수단위원 구성은 각 파의 회장을 당연직으로 하고 지역실정에 따라 증원할 수 있으며 회장단협의회의 심의를 거쳐 정기총회에서 의결하여 추진하였다. ▶ 전자족보 수단 참여도가 저조하다.
이번 9수보는 도표2의 2015년도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현씨 인구가 총 88,824명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수단해야 할 추정치는 현씨 총인구에 60%인 53,294명을 수단 목표로 추진했다. 2016년도 정기총회에 보고된 자료 도표 3의 파별 수단 참여현황을 보면 최종적으로 24,989명이 참여하여 당초 목표에 47%에 그쳤다.
도표 2. 전국 현씨 시도 인구수
그나마 전자족보 참여율이 높다 할 수 있는 종파는 제주목사공, 판관공, 중서사인공, 중랑장공, 소위장군공 등으로 각 종친들에 수단의 필요성을 알리며 수시로 수단할 수 있음을 홍보해야 한다. 도표 3. 파별 수단 참여현황
특이한 사항은 수단참여 종파 중에 제주목사공이 48%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제주지역에 거주하는 현씨가 전국 15.3%인 13,559명에 불과한데 족보 수단에 참여한 수가 11,971명으로 수단율이 가장 높다는 것은 족보에 대한 관심과 제주목사공파 수단을 담당한 위원들의 활발히 노력하여 공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제주목사공은 과거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온 이유도 있겠지만 화합과 단결이 잘 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족보 수단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를 당시 조사한 자료를 요약하여 보면은 (가) 과거에 가부장적 대가족 중심사회에서 핵가족화로 인한 개인주의 성향의 팽배로 각 종친회 모임이나 시제 등에 관심 부족으로 젊은 세대들의 족보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 장자중심의 씨족문화 영향으로 족보는 종손 또는 장손이 할 일로 여겨 족보자료 수집에 비협조적이고 수단비용 때문에 종손들은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다) 종친들의 도시 진출에 따른 바쁜 생활로 연락이 안 되어 전자족보 편찬하는 것도 모르고 있다. (라) 아들이 없는 종친은 대를 이을 수 없다는 이유로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뢰 높은 대동보를 제작하려면 수단위원들이 발품팔이가 필요한데 일부 종파가 관심 부족으로 작업이 많이 지연되었다. 당초 계획은 2013년 4월 ~ 2014년 9월 종료 예정이었으나 2016년 末이 되어야 완료하게 되었다. ▶ 전자족보 마무리 전자족보 사업은 약 4년여에 걸쳐 각 종 회의 할 때와 지역종친회를 순회하며 적극적인 안내를 하였으나 일부 종파에서 전자족보에 대한 관심부족으로 수단접수 마감 결과 당초 목표에 47% 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저조한 수단 참여로 인하여 당초 사업계획인 DVD(전자족보)와 서책족보의 제작을 1단계로 DVD만 제작하여 전자족보사업을 마무리 짓고 2단계로 수단신청을 계속 받아들여 수단 참여율이 80%이상 되고 난 이후에 종친들의 요청이 있으면 족보서책을 발간하는 것으로 2017년 정기총회에서 결론을 내렸다. 전자족보 또한 47%란 미완성의 수단으로 대동보의 신뢰성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보화시대의 부름에 응하는 것으로 진일보했다고 여겨지며 향후 지속적으로 족보 수단이 이루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할 일이다. 3. 현씨 대동보도 인터넷족보 시대에 참여한다. 이러한 선조님들이 구축하여 놓은 대동보를 전자화하는 단계까지 이른 가운데 대종회는 2019년 3월 29일 정기총회에서 제6대 회장으로 5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경대 대종회 고문을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경대 회장님이 취임하면서 “대종회 화합과 활성화를 위해 젊은 세대 종친들의 대종회 참여가 필수적이다. 젊은 종친들간에 소통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소통에 가교역할을 할 시스템은 대종회 홈페이지다”라고 하며 2019년 6월 13일 제2차 이사회에서 홈페이지 구축과 전자족보(DVD)를 홈페이지에 탑재하고 인터넷족보를 운영할 것을 승인받다. 이러한 홈페이지 구축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종회 사무처에서 “홈페이지 구축을 위한 홍보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차에 걸쳐 토론과 논의하는 등 노력한 결과 2020년 1월초에 연주현씨대종회 홈페이지(주소: hyunc.kr)를 개설하게 되었다. 그 후 6월초 홈페이지에 전자족보를 탑재하여 인터넷족보를 실현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종친간에 소통과 상부상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활용할 대종회 홈페이지가 기대되어지는 부분이다. 또한 핸드폰으로 대종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종친들의 소식과 족보도 볼 수 있도록 모바일 시스템을 갖추었다. ▶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족보 열람 효과 첫째, 전자족보에 등재되어있는 종친들은 언제 어디서든 쉽고 편리하게 자신의 족보자료를 현장에서 통신기기로 실시간 검색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상호간에 족보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할 수 있게 되어 종친 간의 친화력과 화합력을 현장에서 바로 높일 수 있다. 둘째, 전자족보는 기존의 서책 형태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데 불편을 느껴 그 활용에 소극적인 젊은 세대들에 활용도가 높아져 지금처럼 소극적 계층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 계층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또한 족보수단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되어 진다. 4. 향후 우리 대동보의 과제를 해결하자. ▶ 대동보의 미비한 수단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9수보의 수단에 참여하지 못한 종파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종파들을 설득하여 수단이 미비한 대동보를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9수보(전자족보)의 수단현황을 참고하여 현씨 총인구수에 수단해야 할 추정치 60%인 53,294명을 수단 목표로 삼았는데 참여율이 47% 밖에 안 되었다. 이것을 80%이상 수단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종친들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내외 계시는 모든 종친들께서 족보 정리가 누락되거나 미비하여 보완 사항이 발생한다면 연주현씨대종회 홈페이지(주소: hyunc.kr)의 『수단(收單)요청』 게시판을 통해 수시로 수단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며, 우리 현씨는 21세기 정보화에 걸 맞는 인터넷 족보를 운영하고 있다. 종친들께서는 조상님들이 물려준 900년의 유전적 기록물인 족보를 현대화했다는 긍지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수단하여 신뢰받는 연주현씨대동보가 될 수 있도록 유지관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가족증명서의 본관을 올바로 쓰자. 우리 선조들께서 1747년에 초판 대동보를 편찬하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할아버지가 시조임을 확인하고 현씨의 본관(本貫)을 “연주(延州)” 단일본으로 쓰자고 한지 27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도표 4처럼 다른 본관을 쓰는 종친이 많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전국 현씨가 88,824명인데 연주를 본관으로 쓰는 수가 56,047명이다. 나머지 33,227명은 성주(15,995명), 창원(2,503명), 순천(1,358명), 연일(1,290명), 기타(12,081명) 등으로 본을 쓰고 있다. “延州”가 현씨의 본관인데 지역별로 성주, 창원, 순천, 함안, 연일 등으로 쓰고 있다 하여도 이들은 모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현 담字윤公을 시조로 받드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자손들이며 각자 살았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도표4. 현씨의 본관별 인구수(2015년)
또한 6.25사변으로 호적(가족관계증명서)이 분실되었거나 그 외 여러 가지 사유로 호적(가족관계증명서)의 본관이 잘못 쓰였다 하드라도 하루 빨리 올바른 본관으로 정정하여 쓰기를 바랄뿐이다. 연주현씨 대동보에 등재된 종친은 대종회에서 발급하는 ‘사실증명서’를 첨부하여 법원에 신청하면 본관정정이 가능하며 족보에 미등재된 종친은 조상의 근거지를 파악하여 대동보 등재하는 것이 먼저 일듯 하다. ▶ 족보의 소중함을 알자. 오늘날 족보는 핵가족화로 친족에 관한 유대가 희미해지며 심지어 젊은 세대의 경우 자신의 뿌리는 물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함자도 모르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족보문화가 산업사회에서 개인주의 팽배로 우리에게 구태의연하게 보이고 고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사실 이러한 편견은 족보자체가 아니고 과거 족보가 양반중심 사회의 신분제도와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데 있다고 보아진다. 족보란 우리 성씨의 역사서라 하지만 '나'라는 인생이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근거이며 내 부모,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우리의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결국 누구나 다 뿌리가 있어 나의 존재를 확인하여 주고 내 삶의 근원(根源)임을 알고 인생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것이 족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러는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알아 겸손하게 내 삶의 족적(足跡)을 묵상(默想)하게도 하는 것이 바로 족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함이 느껴진다. 참고 자료 1. 연주현씨 원류사 2. 연주현씨대종회 정기총회 자료 3. 두산 백과사전 4. 2015년도 인구통계조사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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